• 소설가 최지은님의 하벤과 독의 나무를 연재합니다. [하벤과 독의 나무] 1화 - 자유의 몸
  • [하벤과 독의 나무] 1화 - 자유의 몸

  • 저희 투위복지뉴스에서는 매주 월.수.금 3회에 걸쳐 소설가 최지은님의 [판타지소설- '하벤과 독의 나무')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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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 누구 있소?"​

    자그마한 사내가 이렇게 물었다. 그는 거추장스러운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 모양새가 퍽 엉성해보였다.

    "누구 있다면 말 좀 하시오."

    사내가 초조한 듯 또 물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적막, 오로지 적막 뿐이었다.​

    사내는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를 조심스럽게 나무 옆에 내려놓았다. 그 나무는 아주 오래된 나무였다. 전설 또한 지니고 있는 나무였는데, 그 전설에 따르면 나무의 나이는 무려 1500살이라고 한다. 사내는 나무의 결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아주 차가웠다. 이상할 만큼 차가웠다. 사내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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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동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난 자유의 몸이다!"​

    사내는 화들짝 놀라 동굴을 쳐다보았다. 그 깊은 곳, 그 깊은 곳 너머에서 광기로 가득 찬 소리가 끊임 없이 들려왔다.​

    "아무도 날 막을 순 없어! 이제 난 자유라구, 자유!"

    사내는 이제 공포에 질렸다. 어둡고 축축한 진흙 같은 공포가 사내의 정신 속에 파고 들었다.​

    사내는 무의식적으로 빗자루를 다시 들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빗자루로 몸을 가렸다. 의문의 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맙소사, 맙소사! 장장 50년간 옥살이를 했어. 하지만 이제 난 자유야. 어린 소년이었던 내가 백발의 노인이 되어 나왔다구! 나처럼 위대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사내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감옥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찌됐건 지금은 출소한 몸인 듯 했다. 그런데 그 괴기스러운 목소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나왔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를 거야, 암, 모르고 말구. 난 탈옥에 성공했으니까. 탈옥했으니까! 오, 그곳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거야. 왜냐하면 오직 나 혼자만이 그 감옥에 있었으니까! 오, 드래곤들! 드래곤들은 아주 탐욕스러워. 오로지 먹는 것밖에 모르지. 그들은 사람 고기를 좋아해. 나도 거의 잡아먹힐 뻔 했거든. 그래서 아주 잘 알고 있지. 드래곤들은 온갖 방법으로 사람 고기를 먹어. 잘근잘근 씹어먹기도 하고, 보글보글 끓여먹기도 해. 오, 그 얼마나 끔찍한가! 하지만 난 살았지. 그게 전부야. 난 살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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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는 더욱 공포에 질렸다. 공포는 사람을 무의식 속에서 잠들게 한다. 사내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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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굴 속 목소리는 점점 더 희미해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자유의 몸이라는 말만 몇 번 더 되풀이했다. 그 목소리가 사라진 후, 빗자루를 든 사내는 조용히 다시 길을 쓸기 시작했다.

    ​"하벤, 하벤!"

    나이 지긋한 여자가 폭이 넓은 치마를 두 손으로 움켜쥔 채 마구 달려왔다. 그녀는 하벤의 오랜 친구이자 유모인 메케나였다.

    ​"하벤!"​

    메케나의 목소리가 간절해졌다. 하벤은 또 어딜 갔담? 분명 그 망할 숲에 있겠지! 망할 숲, 망할 숲!

    메케나의 생각대로 하벤은 숲에 있었다. 하벤은 숲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숲'에는 더욱이 신비로운 기운이 있었다.

    하벤은 12살 남자 아이였다. 그는 깡마른 몸과는 다르게 오동통한 두 볼, 그리고 놀랍도록 눈이 부신 회색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하벤은 잘생긴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충분히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다.

    "오, 하벤." 메케나가 중얼거렸다. "하벤 이켈리아."

    그제서야 하벤은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고는 천진난만하게 메케나를 불렀다.

    "메케나! 나 여기 있어요! 이 숲에 있다구요!"​

    그러더니 메케나에게 쪼르르 달려와서 쫑알쫑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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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메케나. 이 숲은 정말 멋진 곳이에요. 마치 정령들이 숲 속을 훑고 지나가는 것만 같아요. 숲의 정령들 말이에요!"

    "숲의 정령들은 모두 전설에 불과해. 하벤, 이제 그만 돌아가자. 오늘 아주 중요한 손님이 오시잖니."

    ​"아, 맞아요. 중요한 손님이 오시죠. 하지만 전 중요한 손님이 오신다는 것 밖에 몰라요. 그 중요한 손님이라는 분이 대체 누구죠?"

    ​"하벤, 더 이상의 질문은 안 돼. 그리고 좀 있으면 알게 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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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케나가 조신한 척을 하며 말했다.

    ​"하벤, 세상에, 어딜 갔다 온 거니?"

    ​하벤의 어머니인 이켈리아 부인이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그녀는 아들의 바짓단이 온통 진흙투성이인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숲에 갔다 왔어요."

    하벤이 조금 뾰로통해져서 대답했다.

    ​"숲에 갔다 왔다구? 세상에, 또 왜 그런 거니? 앞으로는 절대... 메케나, 괜찮아요?"

    ​이켈리아 부인이 메케나를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메케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하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마님. 전 그냥... 오, 말하지 않을래요."


    이켈리아 부인은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벤은 영문을 몰라 두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을 뿐이었다.

    "자, 곧 손님이 오실 거에요. 그러니까 하벤, 넌 옷 좀 갈아입자.  메케나, 옷을 들고 따라와요."

    ​메케나는 하벤의 옷방에서 옷을 찾아 이켈리아 부인과 하벤을 따라갔다. 하벤은 어느새 자그마한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켈리아 부인은 메케나가 가져온 옷을 가지고 하벤과 단 둘이 그 방에 들어갔다. 메케나는 눈물을 훔치며 응접실로 향했다.

    "엄마, 왜 메케나는 안 와? 그리고 여긴 뭐야?"

    ​하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물었다. 그러자 이켈리아 부인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하벤, 잘 들어. 곧 손님이 오실 거고, 넌 반드시 바르게 행동해야만 해. 인사 똑바로 하고, 예의를 차려."

    ​"왜?" 하벤이 순진무구하게 되물었다.

    "그래야만 하니까!"

    ​이켈리아 부인은 그렇게 한 번 고함을 치고, 하벤의 옷을 갈아입힌 후 다시 응접실로 갔다.

    ​하벤은 이 모든 게 이상하기만 했다. 어째서 엄마와 메케나가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 갑자기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다.

    ​이켈리아 저택의 응접실은 나름대로 호화로운 편에 속했다. 깔끔한 대리석 바닥은 반짝거렸고, 벽에는 금박으로 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테이블은 하나뿐이었지만 정교하고 튼튼했다. 책장 속에는 수많은 책들이 꽂혀져 있었다. 하벤은 언젠간 어른이 되어서 저 책들을 다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시계는 계속 똑딱거렸다. 하벤은 잔뜩 긴장하여 두 다리를 딱 붙이고 소파 위에 앉아 있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손님이 온 것이다.

    사람들이 잠긴 목으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도련님을 보낼 생각이신가?"

    ​"그런 것 같아."

    응접실 문이 열렸다. 곧이어 손님이 나타났다. 하벤은 커다란 두 눈으로 손님을 바라보았다.

    ​손님은 백발니 성성한 노인이었다. 하지만 정작 얼굴은 그렇게 나이가 든 것 같지 않았는데, 한 예순다섯 정도로 보였다.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하벤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더욱 활짝 웃으며 이렇게 인사했다.

    ​"네가 하벤이로구나? 만나서 반갑구나, 하벤. 하벤 이켈리아, 맞지? 난 베스모란다. 베스모 사립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지."

    하벤은 어머니가 지시한대로 행동했다. 예의 바르고, 상냥하게. 하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사립 학교라고? 그게 무슨 소리지?'

    ​"이제부터 넌 내 학생이란다, 하벤. 지금 나와 함께 학교로 갈 거야. 그리고 그곳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공부를 할 거란다."

    하벤은 당혹감에 어머니와 유모를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설명을 좀 해달라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와 유모는 하벤의 눈길을 피하기만 했다. 하벤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런, 하벤. 우는 거니? 그러면 안 되지. 진정한 사내는 울지 않는거란다. 그러니 그만 그치렴."

    자신을 베스모라고 소개한 노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이에 하벤은 눈물을 그치려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마차는 준비되었습니다, 어머님. 이제 바로 출발하기만 하면 됩니다."

    ​베스모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이켈리아 부인은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하벤을 끌고 대문으로 나갔다.

    ​"잠깐만, 엄마! 난 아직 갈 준비가 안 됐어!"

    하벤이 울부짖었다. 하지만 이켈리아 부인은 말없이 아들을 마구 끌고 갈 뿐이었다. 하인들은 옆에서 거들지 않았다. 그들은 어머니가 아들을 냉혹하게 키우도록 놔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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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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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에 올라탄 하벤이 절규했다. 마부가 기합을 넣었고, 곧 마차가 출발했다.

    그로써 한 명은 자유의 몸이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자유의 몸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매주 월수금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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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은. 2020






  • 글쓴날 : [20-12-31 02:33]
    • 최수현 기자[2we@2w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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