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수칙이 조정됨에 따라 서울역사박물관(관장 배현숙)은 그동안 공개하지 못했던 기획전시를 시민들에게 공개한다.
현재 관람할 수 있는 기획전시는 서울생활사박물관 <세대 공감-최달용의 서울살이>, 청계천박물관 <미디어아트X세운상가>, 한양도성박물관 <광희문, 수구문, 시구문>, 공평도시유적전시관 <한양의 家, 견평방 가옥> 등 사전예약제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관람은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를(museum.seoul.go.kr/) 통해 이용방법을 미리 확인하고, 마스크 착용, 입장 전 발열체크, 참석명부 작성 등 방역지침을 준수해야 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본관을 비롯하여 서울생활사박물관, 한양도성박물관, 청계천박물관, 동대문역사관·동대문운동장기념관, 경희궁, 백인제가옥 등을 비롯한 11개의 분관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 새대 청년시절의 일상과 마주하는 <세대 공감-최달용의 서울살이>
해방둥이 서울사람 최달용의 1950~70년대 삶을 사회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산업화 세대를 공감해 볼 수 있는 서울생활사박물관 기획전시 <세대 공감-최달용의 서울살이>는 오는 3월 28일(일)까지 개최한다.
최달용 씨는 초등학교 졸업장부터 혼수용품, 변리사 자격증에 이르는 개인 자료 뿐 아니라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제품들을 평생 성실히 모았다. 그 중 일부인 1,181건을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생활사박물관에 기증하였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이로운 성취를 이룬 해방둥이들은 전쟁의 굶주림을 경험한 마지막 세대이자, 성장의 과실을 맛본 첫 번째 세대이다. 최달용의 기증 자료 및 개인 소장 자료 90여점과 당시의 시대상을 담은 유물 80점을 함께 전시했다.
전시의「도입부」에는 ‘그때의 청년이 지금의 청년과 마주하다’라는 영상이 상영되는데, 서울이라는 같은 공간 속에 다른 시대의 청년이 서로 마주보는 장면을 연출하여 세대 간의 공감을 이끈다.
이어지는 ‘사회학자의 서재’에서는 1950년대부터 70년대의 주요사건들을 유물과 함께 조망한 후 본격적으로 최달용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피난 셋방살이부터 변리사가 되기까지」에서는 학업, 취업, 결혼으로 이어지는 삶의 변곡점들을 따라 가면서 아버지 세대가 살아내었던 매일매일의 일상과 당시 서울의 시대상을 들여다본다.
로비 전시 공간에는 변리사 최달용이 평생 수집한 100여점의 아이디어 제품들을 전시하여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미디어아트를 만드는 세운상가의 장인을 만나다…<미디어아트×세운상가>
세운상가에서 이루어진 예술과 기술의 만남에 주목한 전시 <미디어아트×세운상가>는 오는 5월 9일까지 청계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
1970~80년대, 텔레비전의 유통과 수리가 가능했던 공간, 세운상가. 종로와 중구 일대 라디오·텔레비전학원 출신 기술인력의 일부는 청계천 주변의 전자상가에 정착하며, 전자 회로도를 공유하고 나름의 기술을 축적하였다.
한국 미디어아트의 산실 세운상가! 1960년대 실험적인 새로운 방식의 예술을 선보인 미디어아트의 거장 백남준이 중고 TV를 사기 위해 거닐었던 곳이 세운·청계천변이며, 테크니션 이정성이 기술 익히며 성장한 곳도 세운상가다. 전시에서는 공개되는 백남준의 스케치 100여 점과 백남준의 <자화상 달마도>를 만날 수 있다.
’84 SITRA(서울국제무역박람회) 삼성관에서 429대의 TV를 설치하고 실력을 인정받은 기술자 이정성은 세운상가에서에서 익힌 기술력으로 분배기를 제작하여 여러 대의 TV를 연결하였고, 백남준에 선택된 이후 다다익선(1988)을 시작으로 2005년까지 백남준의 작품제작을 함께한다.
진짜 세운상가에서 인공위성을 만들었다!
세운, 예술공장에서 여전히 활발한 미디어 아트 제작이 이루어진다.
세운상가는 초심자부터 노련한 예술가까지 모든 이들의 탐구·창조하는 모험을 돕는 공간이다.
세운상가의 장인들과 인공위성<OSSI-1>(2013)을 만든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의 인터뷰와 현재 활동 중인 미디어 작가그룹의 작업을 소개한다.
또한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자원을 활용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미 디어아티스트 그룹 서울익스프레스의 <Mechanical Water Stream>을 감상하고, 그 제작과정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공개하였다.
한양도성 동남쪽 작은 문의 이름에 얽힌 역사…<광희문, 수구문, 시구문>
조선시대 여러 이름으로 불렸던 광희문의 역사와 변화상을 소개하는 전시 <광희문, 수구문, 시구문>은 오는 3월 7일(일)까지 한양도성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
광희문은 도성의 동남쪽을 지키던 작은 문(小門)으로 수구문, 시구문 등의 여러 별칭으로 불렸다. 이번 전시는 각각의 이름에 얽힌 광희문의 특징과 역할, 시대적 사건들을 통해 문의 역사와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먼저 ‘도성의 동남쪽 작은 문’ 부분에서는 1396년(태조 5) 건설된 광희문이 현재에 이르는 동안 개축, 훼철을 거쳐 다시 복원되기까지 지나온 역사를 되짚어본다. 특히 병자호란 때 피난길에 올랐던 왕이 광희문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함께 소개된다.
이어지는 ‘광희문의 또 다른 이름’ 부분에서는 광희문을 지칭하던 각각의 별칭과 그에 얽힌 광희문의 특징, 시대적 배경 등을 살펴본다. 광희문의 이름은 본래 ‘빛이 멀리까지 사방을 밝힌다’는 의미였으나 수문(水門) 근처에 위치하였다 하여 수구문(水口門)으로 더 많이 불렸고, 구한말에는 ‘시체를 옮기는 입구(屍口門)’라는 험악한 별명으로도 불렸다.
특히 조선시대 도성 안에는 무덤을 쓸 수 없다는 규정으로 인해 모든 시신은 성 밖으로 내보내 매장해야 했다. 이에 따라 도성의 동쪽 밖으로 나가는 백성들의 장례행렬은 모두 광희문을 통해 나갔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상·장례 절차를 소개하는 영상과 함께 관련 고문헌, 그림, 상여장식 등의 유물이 함께 소개된다. 관람객들은 이를 통해 광희문을 통해 드나들었던 옛 장례 풍경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 한양의 가옥을 엿보다…<한양의 家, 견평방 가옥>
한양 최대 번화가였던 견평방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한양의 家, 견평방 가옥>은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5월 2일(일)까지 개최한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위치한 지역은 조선시대 한양 견평방으로 현재 청진동, 공평동, 인사동 일대로서 특히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시전에 직접 거주하며 생업에 종사하거나 인근에 주거지를 마련했다. 전시는 한양이 수도가 되면서 백성들의 주거지가 어떻게 조성되었는지를 알아보고, 발굴·기록 자료를 근거로 당시 견평방에 위치했던 가옥을 모형으로 제작하여 전시하였다.
<한양의 家, 견평방 가옥>을 통해, 약 100년간 견평방에 있었던 가옥의 거래 과정 중 생산되었던 고문서를 전시·해설하여 한양에서 가옥이 거래되는 과정을 생생히 알 수 있다. 또한, 발굴을 통해 드러난 성과와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견평방에 있었던 가옥 중 특징적인 3곳을 선정하여 모형으로 제작하였고, 당시 생활상을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
이번 전시 외에도 서울역사박물관 본관에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한양을 지켰던 삼군영 군인들을 다룬 <한양을 지켜라_삼군영 소속 한 군인 집안의 고군분투기>(~3월 21일)와 1880~1980년대까지 100년 교육사를 조망하는 <서울학교 100년>(~3월 7일) 전시를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museum.seoul.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시관람은 사전예약제로…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또는 현장접수 신청>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운영 방침에 따라 별도 공지 시까지 사전예약관람제로 운영한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3회(10-12시/ 13-15시/ 16-18시), 회당 2시간 관람 가능하다. 관람 예약은 서울특별시 공공서비스예약(yeyak.seoul.go.kr)에서 할 수 있으며,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